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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내 신발이 갖고 있는 패션의 진정한 의미
시니어모델 조회수:64 110.70.16.5
2021-02-13 12:16:22



우리 나이때에서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추억의 물품으로 많이 등장하는 게 비가 올 때 필요한 우산에 얽힌 사연을 비롯해서 학창시절에 입었던 교복도 떠오르고, 동네에 같은 또래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구슬치기를 한 놀이도 가끔 생각이 나곤 한다.

그리고 가끔씩 마을 어귀를 찾아오던 엿장수와 얽힌 이야기도 그렇고, 시장통 중국집에 가서 처음으로 먹어본 짜장면이 그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수없이 많다.

그 많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물품 중에는 유독 내가 신고 다닌 신발과 관련한 얘기가 많아서 이번 기회에 그걸 한번 끄집어내 그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 내 신발이 갖고있는 패션의 의미를 알아 보려고 한다.

그때는 못 먹고 못 입은 시절이라서 언제부턴가 이런 말을 학교에 갈 때 줄줄 외우고 다녔었다. 아마도 군사혁명공약의 일부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고^로 시작하는 그말이다. 우리집 사정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해서 우선 당장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각박한 살림살이기에 그 당시 내가 말하려고 하는 신발 따위는 분명 사치스런 물품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식구들의 끼니를 때우는 것이 그 당시엔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삶의 1순위가 되었기에, 목구멍이 포도청인 그시절을 아련하게 떠오르게 하는 검정고무신 한컬래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는 꼬마들도 꽤 많았었다. 신발은 어찌보면 아주 중요한 인간의 실용적인 교통수단인데,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지구 한쪽 어디선가는 지금도 신발 없이 원시인처럼 살고 있는걸 알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설날 때 어렵게 사준 콧백이 신발이 너무 좋아서 머리맡 이불속에 넣고 잠을 자던 여동생의 표정이 그렇게 안쓰러웠던지 어머니는 잠을 자는 딸 몰래 벽장속에 신발을 잠시 숨겨 놓았다.

그런데 아침에 그만 눈을 뜬 여동생이 신발이 없어졌다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벽장에서 내가 신발을 꺼내준 적이 있을 정도로 특히 신발은 여자들에겐 옛날부터 아주 특별한 애장품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년에 딱 한 두번 그것도 양 명절 때 새 신발을 신게 돼서 그때가  정말 좋았던 것은 그 신발 하나로 일년 내내 신어야 했고, 어쩌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헝겊을 대서 고쳐 신을 만큼 신발이 소중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의 물품이 되었다.

삶의 애환이 묻어있는 신발에 얽힌 내용을 요즘 애들에게 말을 하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질 또한 엉성해서 수명도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쩌다가 신발 선물이라도 받으면 여간 즐거울 수밖에 없었는데, 한편에서는 이런 신발을 너무 신어서 바닥이 달거나 찢어졌는데도 그냥 질질 끌고 다니며 신었던 애들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한 번은 신발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인지 어느 날 뒷부분이 낡아서 찢어지고 말았다. 시골 구시장 모퉁이에 신발 수선집이 있었지만, 요즘의 구두 수선집보다도 훨씬 못한 아주 허잡한 그런 집이었다.

하지만 그 수선집의 주인장은 신발을 요리저리 보더니만 실밥을 뽑고 헌 구두의 반듯한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적당한 모양을 만들어 바느질을 하면 비록 새것은 아닐지라도 신고 다니는데는 별 이상이 없었다.

신발 몇개로 학창시절에 초 중 고 12년을 무사히 마치겠금 정녕 내 발을  감싸준 신발인데, 이렇게 소중한 신발을 그만 잃어 버렸던 때도 있었다. 옆 동네에 있는 예배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놨는데 그만 신발이 없어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따라 신주머니를 안 가지고 간 게 이런 화를 불러온 것이다.

그래서 일까. 나는 신발에 대한 소중함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베어서 그런지 신발 자체의 디자인보다는 견고한 면을 중시하는 그야말로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좋다는 선택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요즘 추세는 디자인을 더 중시한 것과는 정반대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 나이 고희에 접어든 지금에 이르러서 신발에 대한 안목이 확 바뀐 대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게 상상할 수없는 의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의 형태에 따라 구색을 맞추는 한마디로 말해서 신발을 다양하게 구비해 그때그때 내 의상 기호에 걸맞는 신발 코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보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그건 내가 시니어모델이 된 후에 이렇게 신발에 대한 안목이 바뀐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모델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몸에 걸치는 드레스패션도 중요하지만 그 의상코디를 빛나게 받쳐줄 신발이 갖는 전체적인 패션 연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어릴때 만만한 신발이 없어서 늘 초라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마음에  요동이 쳐서 그때부터 쓸만한 신발을 구입하다 보니까 어느새 신발은 30컬래가 넘을 정도로 워커에서부터 구두, 단화. 런닝화, 운동화 등이 수두룩하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신발을 구비해 놓을 생각이다.

그때그때의 패션감각에 따라 신고 싶은 신발!  어쩌면 신발은 그 사람의 키를 크게 보이기도 하고, 발걸음을 당당하게도 하고, 몸의 균형미까지 갖춰주는 한마디로 말해서 그 사람의 세련미와 우아함까지 격조있게 연출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변할 수 있는 것은 일찍이 시내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는 내가 아는 여성의 결정적인 도움이 컸지만,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신발을 통한 코디는 그 사람을 얼마든지 화려하게 변신을 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오늘도 나는 멋진 옷을 입고 그 옷에 맞는 디자인을 고려하고, 색상까지 부합하는 신발을 선택하여 당당하게 워킹하기 위해서 집을 나서고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누가봐도 분명 칠색조로 분장한 칠면조라서 그러하다.

이러니 우리집에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들은 내가 디스플레이 한 정갈한 신발진열대만 봐도 내가 모델이란걸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신발에 대한 애착이 크게 변했다. 신발은 단지 실용적인 삶의 교통수단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여흥을 즐기는 패션의 도구이기 때문에 매우 애착이 가는 물품이 되었다.

내가 오늘 신는 신발이야말로 내 자신의 필요불급한 발광체 기능까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게 신발이 갖는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종전에 내가 편하게 신었던 신발에 대한 식견이 바뀌어 좀더 품위 있게 신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어찌보면 어린 시절 꿔메고 바닥이 달대까지 신은 신발에 대한 안 좋은 추억에 그만 반기를 들어서 이제는 나도 거리를 맘껏 활보하는 그 신발을 내가 선택하고, 내가 당당히 신고서 멋스럽게 표현하는 이른바, 새로운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표출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갈 때면 출입구쪽에 진열된 여러 종류의 신발 중에서 내가 입고 나가는 옷에 맞춰 그날그날 어떤 신발을 신을지  신발을 바라보는 이 때가 정말 뿌듯하고 행복하다. 말없이 주인장의 선택을 묵묵히 바라보는 신발들 또한 나를 보고 얼마나 반기면서 기뻐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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